우리나라 6월의 하늘은 잿빛이다. 숭고한 호국 영령들을 추념하는 향연(香煙)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6월 6일 현충일부터 6월 25일 전쟁 발발일까지 추모와 보훈의 정신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런 이유는 1950년 6월, 세계사적으로 보기 어려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됐다. 누구나 생각하기조차 싫은 6·25전쟁은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 전쟁이면서도 민족 내부의 전쟁이었다. 미국과 구소련이라는 양대 냉전 세력에 의해 전쟁이 유도됨으로써 결국, 우리나라 전쟁인 동시에 세계 전체의 전쟁으로 인류 공동의 전쟁이 되고 말았다.

이 전쟁에 대해 지금까지 공영방송 KBS에서조차 ‘한국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닉네임은 미국에서 붙이고 사용한 명칭이라서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 자국에서 일어난 전쟁을 자국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내전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한국동란, 그리고 6·25동란은 육십갑자를 적용해 ‘경인동란’으로 쓰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영어로 한국전쟁이라 번역해 사용하며,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6·25전쟁 혹은 6·25사변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

이 전쟁이 수년 동안 지속하면서 체제를 달리하던 남과 북 사이에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고,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은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확산해 영향을 끼쳤다. 이로써 다수의 국민에게는 전쟁 전후 시기의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의식이 크게 자리하게 됐다. 즉, 충격적 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증후군으로 불리는 ‘트라우마’ 문제이다.

캐나다 빅토리아대학의 통계학자인 해롤드 포스터 박사가 1976년에 처음 제시한 ‘재난의 크기 스케일’로 본다면 6·25사변은 대참사로 분류된다. 2차 세계대전과 14세기 흑사병, 제1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 전쟁이었다. 오늘날까지 이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전쟁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빨갱이라는 생활 용어부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반공과 멸공 선전구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여전히 남은 숙제가 많다.

이 비극적 전쟁의 트라우마는 이 땅에 태어난 후예들에게도 뚜렷하다. ADHD와도 같은 잠재된 트라우마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만들어졌다. 모진 전쟁과 가난했던 때 어머니의 불안한 심리와 태도가 고스란히 그 시절 태아에 전달돼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과잉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타인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히 “삶이 전쟁이다”라는 말은 곧, 현실의 문제를 말한다. 경제적 문제는 예전과 다른 양상일 수 있겠지만, 현대인에게 정신적 불안정은 더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쟁 트라우마에 의한 유전적 문제는 2000년대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있다.
 

하지만 전쟁 1세대와 2세대에게 남은 상처는 못 박았던 자국처럼 가슴 속에 선명하다. 우리 3세대가 1950~60년대 고통과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전쟁의 남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그때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출발해야 얻을 수 있는 일이다.

세계는 지금, 코로나19와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육체와의 대결을 이겨내고, 마음 깊은 곳에 응어리진 채로 남아 있는 비극적 전쟁의 상처는 맑은 생각과 밝은 마음이 많아질 때 자연히 치유될 것이라고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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