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그늘에 애기나리꽃이 한창 피어 있다.

연둣빛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했던 숲이 입하가 지나자 점점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반갑지 않은 황사와 미세먼지를 제외하면 참으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아직도 기세를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는 여전히 여행을 주저하게 만들고, 동네 산책으로 만족하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여행을 추억하고,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만들어 먹는 게 요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십여 년 전 경북 영주 부석사와 봉화 지역을 둘러보는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 유명한 관광지뿐만 아니라 조그만 박물관도 관람했다. 인적 드문 산골에 덩그러니 지어진 박물관은 너무나 썰렁했다. 한가했던 중년의 문화해설사는 유일한 관람객인 우리가 너무 반가웠는지 계속 우리 옆을 붙어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시간 넘게 들었던 그분 이야기는 거의 다 잊혀진지 오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나는 말은 “산은 자연스럽다. 사람도 자연과 같다” 라는 말이었다. 숲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던 시절 그냥 흘려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무슨 이유일까.

산길을 산책하면서 펼쳐지는 눈앞의 풍경은 지금 자연스러운 모습인가? 스스로 질문해본다. 나무와 풀이 있다. 큰 바위가 있고 자갈이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에 이따금 층층나무와 때죽나무가, 나무 밑 그늘엔 무리 지어 있는 둥굴레와 애기나리, 햇살 좋은 양지에선 쑥과 양지꽃이 한창이다. 떨어진 낙엽과 그 사이로 올라오는 새싹이 보였다. 키 큰 소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어울려 있었다. 지난 태풍에 부러진 나무가 있고, 구석엔 썩어가는 나무가 보였다. 나무의 뿌리를 이기지 못해 갈라진 바위가 있으며, 그늘진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풀이 보였다. 흙이 쓸린 자리엔 고사리며 사초들이 척박한 땅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그 자리가 자기 자리인 양 자연스럽게 차지하고 있었다.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런 숲

‘자연(自然)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억지로 꾸미지 않아 이상함이 없고, 순리에 맞고 당연하며,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고 저절로 된 듯하다고 나온다.

숲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원과 환경은 우리 모습과 닮아있긴 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은 이쁘고 잘생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키가 작고 큰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 그리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마다 각각 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구성원이 숲을 이루는 모습처럼 우리 삶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한편, 이를 바로 인정하자니 우울한 생각도 든다. 마치 모든 것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내가 사회에서 도태될 지라도, 내가 아프더라도 밖에서 봤을 땐 그저 자연스러운 다양한 구성원 중 하나로 보일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척박한 흙더미를 받쳐주는 고사리

하지만 단순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아닌 상호의존적이며, 서로 보완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적응력을 가진 자연의 모습처럼, 인간이 가진 사회성 또는 관계성, 함께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같은 보이지 않는 보험이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키기도 한다. 그 덕에 사람들은 병을 치료받기도 하고, 운이든 노력이 가미되든 간에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줄 거란 작은 기대감을 가질 테니 말이다.

코로나19의 발병은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기후위기로 인해 인간에게 내려진 재앙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앞에서 우리는 다시 이 위기상황을 극복하리라 기대한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과 상호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마음과 의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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