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아이클릭아트

1804년 12월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가 됐다.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은 독일지역의 신성로마제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유력 가문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됐다. 15세기 후반부터 강력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황제를 세습했으나 그 과정은 여전히 투표에 의한 것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일지역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당시 유럽 일대 최대 가문이었다. 혁명으로 전통질서를 파괴한 프랑스를 원상복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유럽 왕실들은 나폴레옹과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천재라고 불리던 나폴레옹을 상대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연전연승 하면서 독일지역에서 황제 투표권을 가진 귀족들을 프랑스 쪽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면 신성로마 황제 자리 자체를 다른 귀족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프란츠 2세는 독일지역을 뺀 동유럽지역의 영지를 하나로 모아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을 만들어서 황제가 됐다.

끊임없이 나폴레옹에게 패배하면서 지치지 않고 기회만 나면 군대를 모아 저항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황제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한 나폴레옹을 상대로 연합군이 결성돼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승전한 연합군 지도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축제를 벌였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황제는 프랑스 군대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 과학기술이라는 생각으로 우수한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1815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왕실 기술대학이 설립됐다. 처음에는 군사과학과 경제학 중심이었지만 점차 다양한 과목이 개설됐다. 1829년 26살의 젊은 청년이 왕실기술대학을 졸업했다.

수학, 과학, 천문학 등에 우수한 성적을 거뒀던 이 청년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현장 근무보다 연구직을 원했던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유럽에서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신대륙인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짐을 싸고 있던 중 프라하의 한 대학에서 수학 강사 자리가 비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젊은 청년은 프라하에서 초급 수학 강의부터 시작해서 몇 년 뒤인 1841년 전임교수가 됐다. 1842년 프라하 보헤미아 왕립학회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었는데 5월 25일, 강의장에 들어서자 청중은 5명뿐이었다. 젊은 교수는 5명 앞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얼마 뒤 그의 논문이 출판돼 많은 과학자들에게 전달됐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기계의 정밀한 운용을 위한 수학적 계산과 물리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뉴턴이 프리즘을 통해 하나의 빛 속에 다양한 형태의 무지개 빛깔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빛이 직진하는 입자가 아닌 물결처럼 움직이면서 전파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빛이 물결처럼 움직이면서 전달된다면 밤하늘 별빛 역시 그런 형태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어떤 별은 빨갛게 보이고, 어떤 별은 파랗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을 두면서 별의 색깔이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서로 근접해 있던 두 별의 경우 색깔이 일정 주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과학적 궁금증 중 하나였다.

젊은 교수의 강의 내용은 빨간색은 파란색보다 움직임 폭이 짧은데, 만일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별이라면 빛의 진폭 시간이 짧아지게 되므로 빨간색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에게서 멀어질 경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파란색으로 보인다. 별의 색깔이 바뀌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 젊은 크리스티안 도플러 교수의 주장은 곧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과연 도플러 교수의 주장이 사실일까? 밤하늘의 별을 가지고 실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비슷한 형태의 물질은 주변에 많이 있었다. 도플러 교수의 주장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 한 명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직접 확인에 나서기로 했다. 새롭게 놓인 철도노선의 기차에 신호용으로 사용되던 호른을 이용해 일정한 음을 내게 했다. 움직이는 기차가 역으로 다가올 때에는 음파의 주기가 짧아지기 때문에 실제음보다 높은 음으로 들리고, 멀어질 때는 낮은 음으로 들렸다. 도플러 교수의 주장이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이 움직임에 따라 색깔이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일부 과학자들은 엉터리 이론이라며 도플러를 공격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도플러는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으나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도플러의 제자들은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빛의 변화를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는데, 1880년대 사진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망원경에 장착된 사진기는 더 넓은 범위의 색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1892년 마침내 별의 색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플러의 생각대로 별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도플러가 발견한 현상은 음향기기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뒤 레이더 장비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됐다. 1950년 일본 오사카대학의 젊은 교수 시게오 사토무라는 산업용 초음파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토무라의 선배는 초음파가 기계공학뿐 아니라 인체의 질병을 찾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했다.

그는 오사카 의대 교수들과 협력해 심장과 혈액 흐름을 측정하는 새로운 진단장치 개발에 나섰다. 1955년 12월 혈관에 초음파를 쏘고 그 반사파를 측정했다. 혈액이 멀어지면 파장이 길어지고 가까이 오면 파장이 짧아진다는 도플러 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자동차 속도를 측정하듯 혈관 속 혈액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정체되거나 빨라진 곳들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가 시작됐다. 다리 쪽에서 상체로 올라오는 정맥의 경우 중력에 의해서 속도가 느려질 수 있고, 혈액이 정체되면 굳어지기 쉽다. 정맥은 하나가 막히더라도 여러 곁가지들이 많이 있기에 초기에는 가볍게 다리가 붓는 정도로 증상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도플러 효과를 활용한 초음파 검사법은 혈류 이상을 파악해 혈전과 혈관 질환을 미리 알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이동훈 원장

손가락을 통한 촉지법으로 맥박의 높낮이와 빈도, 강, 약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손끝 감각은 서로 다르며 정확하지 않다. 진맥으로 환자를 진료하던 방법에서 현대 과학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별빛을 연구하던 원리는 우리 몸의 혈전을 찾아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으로 혈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혈전은 백신 뿐 아니라 몸의 혈액 상태가 좋지 않거나, 장시간 같은 자세로 근무하는 경우 등 혈류가 좋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건강상태를 파악해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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