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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용인 항일독립운동 발자취를 찾다

기사승인 2021.03.29  22: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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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시위지 12곳에 안내판·표석 설치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독립의 밑거름인 항일유적지를 알리기 위해 2018년부터 항일유적 안내판 및 바닥 표지판을 설치하고 있다.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알리기 사업’을 위해 문헌참조와 현장조사를 진행, 항일유적 목록화 작업을 진행됐으며 중요도, 보존상태, 활용성, 접근성 등을 기준으로 설치대상이 정해졌다. 

경기도가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용인·화성·평택·안성·이천시 등 31개 시·군에 1895년 을미의병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항일독립운동 유적이 산적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항일유적지가 잊혀지거나 사라지고 있었다. 용인시민신문은 2018~2019년 ‘용인 독립운동 유적지, 독립운동가 자취를 찾아서’ 기획에 이어, 민중들이 주체적으로 나선 항일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도와 시, 용인시민들이 설치한 안내판과 표지석을 찾았다.

“1945년 8월 15일, 뜨겁게 맞이한 대한 독립은 일제에 수 십 년 간 항거하며 때로는 피 흘리고, 때로는 고통의 시간을 인내했던 우리 민족정신의 가슴 벅찬 결실입니다. 그 독립의 밑거름이었던 우리민족의 항일독립운동 기억과 흔적을 담고 있는 항일유적지를 알리는 노력을 통해 일상에서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편집자 

구성삼거리 앞 3·1운동 만세 시위지
구성삼거리 앞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수지면 주민 100여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수지면 고기리의 이장이던 이덕균은 1919년 3월 28일에 안종각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다음 날 주민 100여명을 이끌고 만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시위대가 동천리를 지나면서 규모는 300명으로 불어났다. 
이어 시위대는 수지면사무소에 이르러 기세를 더욱 떨쳤으며, 안종각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치소가 있었던 읍삼면(구성) 방면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시위를 주도하던 안종각이 일본군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했다.
설치 위치 : 기흥구 마북동 374-10 공중전화부스 옆 

김량장공립보통학교 3·1운동 만세 시위지
김량장공립보통학교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김량장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5년 설립이 인가된 김량장공립보통학교는 1919년 3월에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바로 첫 졸업식이 치러진 1919년 3월 24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일본천황만세 삼창 순서가 되자 만세(萬歲) 대신 망세(亡歲)를 외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졸업식이 끝난 후에도 만세시위를 벌이며 김량장으로 항했다. 이들이 시장을 행진하자 주민들도 이에 호응해 시위에 참여했으나, 순찰 중인 헌병과 맞서다가 해산했다. 
설치 위치 : 처인구 금학로367번길 14 용인초교 정문 옆

김량장터 이익삼 의병 활동지
김량장터 이익삼 의병 활동지는 이익삼 의병부대를 비롯한 용인지역 의병이 주로 활동한 곳이다. 이익삼은 지금의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출신 의병장으로 1907년 8월부터 1909년 6월까지 용인·광주·죽산·양성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같은 지역 출신 정기인 등과 함께 인근 지역 인물들을 규합해 의병활동을 벌였는데, 이들의 주요 활동지가 김량장이었다.
1908년 4월 10일 이익삼 의병은 동장 정한기를 위협해 광목 4필과 짚신 20족을 빼앗아가는 등 주로 친일세력을 처단하거나 빈민을 구제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익삼은 한때 일제도 두려워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으나, 1909년 6월 2일 일제의 수원수비대 토벌대와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했다.
설치위치 : 처인구 김량장동 133-1 금북교 위

남정각 집 터
남정각 집 터는 1920년대에 의열단 단원으로 일본 주요 기관 파괴 활동을 전개한 남정각이 태어난 곳이다. 남정각은 용인군 모현면 파담마을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남정각은 수원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이후 1920년 3월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했고, 1922년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3년 서울로 잠입해 조선총독부 등 주요 건물을 파괴할 계획을 세우고 거사자금을 모금하던 중 이인희의 밀고로 3월 3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됐다. 남정각은 1923년 8월 21일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설치위치 : 처인구 모현읍 파담로 95 집터(공장) 앞 도로변

백암장터 경기지역 의병 활동지
백암장터 경기지역 의병활동지는 대한제국 말기에 경기지역 의병들이 주로 활동한 곳이다. 1907년 8월 전주의병으로 불리는 의병 50여명이 백암장에 나타나 일본인 1명을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 나카하라 소대가 장호원에서 백암장으로 옮겨와 주둔하게 됐다. 
9월 13일에는 임옥여 의병장이 백암장에서 순사·순검 1명씩 총살했으며, 1909년에도 5월 12일과 7월 4일 두 차례에 걸쳐 의병이 백암장에 출몰했다. 이처럼 백암장은 용인~이천과 죽전~안성 등지를 연결하는 주요 길목이었기 때문에 경기지역 의병이 거점으로 삼아 활동했다.
설치위치 : 처인구 백암면 근창로 20-11(백암리 641-58) 상암교사거리 보도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외사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외사면(현 백암면) 주민 3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31일 백암리를 비롯한 외사면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잇달아 습격했다. 이에 일제 헌병이 출동해 발포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밖에 백암리에서는 4월 2일에도 주민 500여명이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해산했고, 3일에도 시위운동을 계획했지만 사전에 발각돼 실행되지 못했다.
설치 위치 :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201번길 16 백암우체국 앞 공중전화부스 옆

용인지역 의병 공격 대상지-송병준 별장
용인지역 의병 공격 대상지는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송병준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용인지역 의병들이 일본군과 일진회 회원 등을 처단하고자 공격했던 곳이다. 1907년 8월 24일 양지에서 용인지역 의병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였다. 이때 의병부대에 패한 일본군은 송병준의 별장으로 도주했고, 일제는 이곳에 수십 명의 순사를 배치해 의병 공격에 대비했다.
송병준 별장은 친일세력의 거점이자 일진회 회원들의 집합소 역할을 했기 때문에 용인지역 의병의 주요 공격대상지가 됐다.
설치 위치 :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 239-5 ACTS비전빌리지 입구 은행나무 보호울타리 앞

원삼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원삼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원삼면 주민 2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21일 새벽 좌찬고개(옛 좌전고개)에서 만세를 부르던 시위대는 좌항리와 사암리를 거쳐 원삼면사무소에 이르렀다. 이때 면사무소와 가까운 고당리·문촌리 주민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김영달·김성남·이용환·김창연 등은 중간에 합류한 황경준·김은수·최상근·안명옥 등과 함께 군중들을 인솔해 만세를 외쳤다. 이은표와 이인하 등은 전날 만든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시위대는 다시 외사면 백암리로 이동하려 했으나 외사면 초입인 비둘기고개에서 일제 경찰의 발포로 해산했다.
설치 위치 :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 67-8 시립원삼어린이집 정문 옆(남쪽) 보도

원삼면 3·1운동 준비지
원삼면 3·1운동 준비지는 원삼면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 주동자들이 시위계획을 최종 모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한 곳이다. 1919년 3월 15일 원삼면 좌항리의 황경준·김영달·김성남, 맹리의 이은표·이용환 등은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용인에서도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했다.
이들은 20일 밤 평창리 도창마을 입구 최상근의 주막에 모여 만세 시위에 쓸 태극기를 제작했다. 21일이 되자 횃불을 들고 좌찬고개(옛 좌전고개)에서 만세를 부르는 한편,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면서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알렸다. 이처럼 최상근 주막 터는 원삼면 3·1운동(3·21만세운동)의 근원지였다.
설치 위치 :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 645-7 편의점 입간판 옆

이동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이동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이동면 주민 2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31일 당시 용인군 송전리 삼거리에 있는 이동면사무소 앞에서 주민 2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놀란 송전리 주재 헌병들이 출동해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설치 위치 : 처인구 이동읍 경기동로 688 이동파출소 게시판 옆

3·29 머내만세운동 발상지
머내만세운동 발상지는 수지면 고기리와 동천치 주민 1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출발지이다. 이곳에서 고기리와 동천리 주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시작했다. 표지석에는 머내만세운동을 주도하거나 이에 적극 참여한 머내 애국지사 17명의 이름과 당시 시위 경로가 새겨져 있다. 용인시와 고기·동천동 주민들은 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9년 4월 29일 표석을 세웠다.
설치 위치 : 수지구 고기동 755-45 고기초등학교 정문 옆 

3·30 기흥만세운동 집결지
1919년 3월 30일, 하갈리에서 김구식의 주도로 이행식·조국형 등과 더불어 개울번던(신갈인터체인지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며 기흥면사무소로 진출했다. 공세리 탑안골 강가에서 일어난 시위대 역시 신갈까지 진출해 면사무소를 습격하려 했으나 일본 헌병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용인시와 기흥 신갈·하갈·구갈·농서동 주민들은 기흥지역 만세운동을 기억하고,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옛 기흥면사무소에 2020년 8월 15일 기념 표석을 세웠다. 
표석 설치 위치 : 기흥구 신갈로58번길 11 신갈동행정복지센터 앞(주민자치센터 사이)

함승태 기자 stham@yongin21.co.kr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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