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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숲 속 역사쉼터, 정암 조광조 뜻 기린 용인 심곡서원

기사승인 2021.02.13  11: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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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문화유산 이야기-수지구 심곡서원

상현동 대표 역사 문화 공간…뚜렷한 존재감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위치한 시적 제 530호 심곡서원 전경 / 우상표 기자

수지구는 용인시 3개 구 가운데 아파트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교산에 올라가서 수지구 일대를 바라보면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처럼 대단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 한복판 서원은 어떤 조화를 이룰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수지구 심곡로 16-9에 도착하니 용인향교서 본 홍살문이 방문객을 맞았다. 서원을 뒤로하고 맞은편엔 고층 아파트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처음엔 다소 조화롭지 못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두커니 서서 서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원 덕에 상현동 일대가 덜 상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원마저 없었다면, 상현동에서 광교에 이르는 곳이 온통 아파트로 촘촘히 메꿔졌지 않았을까. 서원이 아파트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주민들에게 문화를 풍요롭게 도와주고 있다. 

이처럼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이전에 갔던 문화유적지보다 대중교통 노선이 더 수월했다. 정몽주 선생의 묘나 보정동 고분군의 경우 대중교통편이 없다시피 했는데, 심곡서원은 신분당선 성복역 4번 출구에서 150여 미터 떨어져 있어 지하철 이용도 가능하다. 버스의 경우 720-1, 720-3, 7, 7-2 등을 타서 심곡서원, 상현지구대에서 하차하면 되고 광역버스는 5500(서울역), 1570(강남역)을 타고 성복역에서 내리면 된다. 

심곡서원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안타깝게 세상 떠난 젊은 개혁가 조광조  
심곡서원은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곳이다. 이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광조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조광조는 조선 중기 학자, 정치가로 사극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그만큼 조선 역사를 얘기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다. 

29살에 관직에 입문한 조광조는 중종의 힘을 얻어 초고속 승진을 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조광조는 유교적 이상 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며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일까. 조광조를 비롯해 젊은 사림세력은 현실을 돌아보지 못했고 이상만을 추구했다. 이런 까닭에 자신을 선택한 중종조차 성급한 개혁에 지쳐만 갔고, 이를 눈치 챈 공신세력은 조광조를 죽일 음모를 꾸몄다. 
 

심곡서원에는 정암 선생 위패 등이 모셔져 있다.

‘주초위왕’이라는 글을 꿀로 나뭇잎 위에 써놓고 벌레가 그걸 먹게끔 한 것이다. 이를 보고 조광조가 왕이 되려고 모함했고 이 사건으로 조광조와 사림파는 귀양을 가게 되고, 한 달 뒤 조광조는 사약을 받게 된다. 조광조는 젊은 개혁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꿈꾸던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비록 자신이 꿈꾸던 조선은 보지 못했지만, 이후 후학들에 의해 조선시대에 구현됐다. 젊은 나이에 관직에 입문해 다양한 시도를 한 조광조는 실력자임엔 틀림없다. 

이처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50년 효종은 심곡서원을 설립했다. 효종은 ‘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했다. 이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심곡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무사했던 47개 서원 중 한 곳이다. 

심곡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홍살문을 시작으로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사당)가 일직선으로 배치 돼 있다. 서원 안에는 사적과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이 있는데, 1985년 도난당해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서원 안에는 조광조가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500여 년의 느티나무가 남아 있다. 날이 따듯해지면 이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 조광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싶다. 

사적 제503호로 지정돼 있는 심곡서원

율곡이이는 조광조에 대해 “조광조가 출세한 것이 너무 일러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 아직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충현(忠賢)도 많았으나 이름나기를 좋아하는 자도 섞이어서 의논하는 것이 너무 날카롭고 일하는 것도 점진적이지 않았으며…”라고 평가했다. 조광조가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한 점이 아쉽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조광조가 조금 더 신중하게 또 천천히 다가갔다면 조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역사에 있어서 ‘만약’은 없지만, 문득 조광조가 개혁에 성공한 조선시대가 궁금해진다. 

◇심곡서원의 무궁무진 활용방안 
심곡서원을 포함해 전국 9곳 서원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렸지만, 심곡서원은 제외됐다. 등재 됐다면 용인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있을 뻔 했지만 아쉽게 그러지 못했다. 그럼 어떠랴. 용인시민이 더 아름답게 보존하고 가꾸면 될 일이다. 

이에 용인시는 2025년경까지 심곡서원 앞 공간을 활용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광장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광장이 조성된다면 심곡서원에서 시작하는 광교산 너울길 코스와 시너지를 더해 주민들의 쉼터 겸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보인다. 

상현동에는 서원마을이 있다. 또 상현마을에는 서원초등학교와 서원중·고등학교가 있는데 교가에 ‘정암의 지순하고 올곧은 뜻 이어’라는 구절이 나온다. 정암은 조광조의 호다. 이렇듯 상현동 일대는 조광조 그리고 심곡서원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그만큼 상현동 주민들은 심곡서원에 남다른 애정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한 심곡서원이 상현동 랜드마크이자 문화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 

이보라 기자 brlee@yongin21.co.kr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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