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트로트 노래가 호황을 맞았다. 며칠 전 유명 톱가수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트로트 복고풍이 그야말로 대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처 입은 국민을 위무하는데, ‘미스터 트롯’이 일조를 했다. 갑갑한 심정에 흥을 일으키고, 답답한 실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뿐인가. 제2, 제3의 트로트 지망생이 나타나고, 유사 방송프로그램까지 등장할 정도다. 기나긴 무명시절과 어려운 환경과 마주해온 젊은이들이 부르는 트로트는 모두에게 ‘사이다’ 같은 맛과 흥을 갖게 했다. 

우리가 지금, 트로트 노랫말에 열광하는 것은 시대적 아픔을 같이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BTS의 세계적인 성공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트로트 가수들의 열정과 듣는 이들의 감응이 서로 조우하면서 비로소 공감대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트로트의 열기는 미디어와 SNS의 발달이 그 밑바탕을 이루지만, 시대적인 흐름과도 연결돼 있다. 이러한 문화적 연결은 새로운 조건, 새로운 환경을 규정하고, 그것이 새로운 문화적 반응을 끌어낸다는 관점에서 볼 때, 미스터 트롯은 문화의 또 다른 진화를 암시하고 있다.

1960년대 영국의 시대정신을 반영했던 E.H 카(Carr)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듯이,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투영하는 거울과 같다. 이처럼 역사를 구성하는 힘은 비유전적이고, 공유되며, 익명성을 띠고, 유형화된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문화는 그 특성상 축적된 과거에 의해 조율되므로,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역사적 접근법이 가장 생산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보이지 않게 우리 민족에게 흘러온 문화적 감성이 미스터 트롯에 의해 분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열창하는 트로트 노래에 남녀노소가 호응하는 것도 공존의 역사와 문화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 트롯은 삶에 지친 모든 이들을 위한 헌정곡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숱한 전쟁의 포화 속에 절망한 백성들을 위무하는 노래, 즉 염불이 자리했다.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 그리고 연인을 전장에서 잃어버린 이 땅의 여성과 부모에게 바치는 보시염불인 《보렴(報念)》한 가락은 죽은 자를 천도하고, 산 자들을 치유하는데 한몫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민요와 염불이 유일한 노랫소리였다. 힘든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 부른 노래가 민요였다면, 염불은 모진 질곡의 삶을 헤쳐나가는 일종의 ‘희망가’였다. 이제는 옛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염불 한 가락에 웃고 울고를 반복한 시절도 있었다. 어른 스님들이 하시는 대로 전통의 맛과 멋, 그리고 노랫가락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염불도 트로트의 열기처럼 새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미스터 트롯이나 염불에는 자기 자신만의 노래가 없어도 대중을 위한 소리를 한다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불교 경전과 고승들의 깨침을 노래하는 염불과 마찬가지로, 미스터 트롯은 기성곡을 다시 부른다는 측면에서 노래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미스터 트롯과 염불은 시절 인연에 따라 듣게 될 때,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될 것 같다. 필자는 성산 바윗굴을 염불당 삼아 염불할 수 있어 걱정할 것 없지만, 미스터 트롯 가수들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초심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젊은 트롯 영웅들이 국민을 위무했듯이 이제, 우리가 그들을 지키고 격려할 때다. 무릇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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