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신종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바뀌고 있다. 꺼지지 않던 도시의 불야성마저도 밤 9시면 빛을 잃는다. 정겨운 가족과 친구 사이를 넘어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마스크 장벽이 처진 지 오래다. 아무래도 이 장막은 쉽사리 걷히지 않을 것 같다. 

지난 3일 기준으로 214개 감염국가와 코로나19 확진자가 2618만 명, 사망자 87만 명이 나왔다. 학계에서는 감염자 수가 확진자 수의 10~80배로 추정하고 있다. 2700년 전 석가모니 붓다께서도 “한 사람의 몸에는 8만 종의 벌레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된 이 몸 안에는 이러한 재앙이 있다”고 하셨다. 인간의 몸에 있는 벌레건, 세균 연구에 의한 것이든, 자연환경 변화로 생겨난 것이든 코로나19는 인류의 대재앙으로 기록될 듯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는 세계 질병사에서 14세기 중세 유럽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던 흑사병의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교회사에서 ‘신의 형벌’로까지 여겼던 페스트 또는 흑사병이 창궐한 1347년 10월 이후, 중세유럽은 5년간 약 2000만 명이 사망할 정도로 생지옥이었다. 동남부 유럽과 서아시아에 있는 바다 흑해로부터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항구로 12척 배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흑사병은 이탈리아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에 1348년의 끔찍한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200년간 중세유럽 사회를 휩쓴 흑사병과 달리 오늘날 코로나19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맹목적인 신학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과학적이고 의료적 대응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소와 양 등 동물과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던 흑사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세유럽에서는 많은 사람이 학살되는 등 폭력적 수단까지 자행됐다. 그 후에도 흑사병이 퍼지자 모든 항구에 들어온 선박 짐을 하역하기 전, 40일 동안 바다에 머물도록 하는 등 일종의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배가 질병을 몰고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질 때까지 격리’해 대처했던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에 있어 격리와 검역, 마스크 착용 등을 하는 것도 과거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얻은 지식의 산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라는 용어는 이제 일상화됐고, ‘생활 속 거리두기’까지 생겨났다. 이는 치료제와 백신이 마련되지 않는 지금,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예방 행동수칙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는 일부 사람들과 비종교적 행태들이 있어 안타깝다. 14세기에 40일이던 격리 조치는 의료의학의 발달과 위생 상태가 그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아져서 14일뿐이다. 더욱이 코로나19는 제1·2차 세계대전, 6.25 전쟁과 같이 우리는 물론, 세계인들에게 전쟁 트라우마와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특히 종교 지도자라고 자처한다면 ‘절대 예방’과 ‘사후관리’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난 8월 31일 기준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불교 0명, 이슬람 6명, 가톨릭 55명, 개신교 7616명으로 집계됐다. 불교에서 한 명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한 일이다. 대면 방식의 종교활동과 더불어 법문과 강론의 차이, 찬불가 등 찬양방식의 차이, 또 참여하는 신도, 신자들의 신앙 형태가 다른 결과로 분석하기도 한다. 불교계의 코로나19 대응은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불교 경전에는 “스스로 우물 안에 침을 뱉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하게 준수해야 할 계율이다”라고 일러두었다. 코로나19가 없는 청정한 국토, 화목한 나라를 함께 만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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