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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한 상태, 목에 무엇인가 걸린 듯한 느낌은 흔히 겪는 증상이다. 동양의학에서는 간과 위 기능의 조화가 깨지면서 위의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소장으로 넘어가는 작용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추측했다. 습한 기운으로 몸에 진액이 흐르지 못하거나 위의 기운이 약해서 거꾸로 역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질병의 증상이 기록된 <동의보감>에는 위산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증상을 탄산(呑酸)이라고 묘사했고, 신물을 토하는 것을 토산(吐酸), 가슴이 막히는 듯한 증상을 흉비(胸痺),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금방 토하는 것을 열격(噎膈)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도라지, 감초, 생강, 귤껍질, 대추 등의 약초를 이용해 치료를 시도했다. 

흔한 가슴 불편증상은 서구에서도 고대부터 관찰됐다. 식도 질환은 위, 목, 폐, 심장 등의 이상과 감별하기 어려웠다. 가슴 통증은 종종 심장질환으로 오인됐다. 흉부의 불편을 심장경련, 심장통 혹은 심장화상으로 묘사됐다. 지금도 식도와 접합되는 위 부분을 영어로 심장부(Cardia)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하비가 혈액이 순환되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혈액 흐름이 역류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위의 음식물도 역류된다는 개념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으로 중세 유럽에서는 위장 장애에 녹차 잎을 씹거나 분필이나 산화마그네슘과 같은 광물을 복용했다. 이런 약초들은 위산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1842년 영국의 화학자 토마스 비첨은 알로에와 생강을 환약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변비약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복부의 압력이 내려가면서 위산이 식도로 역류되는 것을 호전시켜주었기에 곧 인기 의약품이 됐다. 대량생산과 뛰어난 광고 효과로 큰 성공을 거둔 비첨의 환약은 1998년까지 생산됐다.

약초로 대증치료는 가능했지만 일시적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한 식도와 위 연결 부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동물실험과 해부학의 발전으로 몇 가지 실마리가 찾아졌다. 식도와 위 경계부위를 조여주는 근육이 발달해 있었는데, 근육 위치가 식도와 위 경계에 정확하게 위치하지 않고 다른 곳에 있을 경우, 소화효소가 식도 표면에 노출될 수 있었다. 강력한 위산이 포함된 소화효소는 특별한 방어기전이 없는 식도 점막을 손상시킬 수 있었다. 산을 중화시키는 제산제가 치료방법으로 떠올랐다. 산을 중화시키면 해결될 것이라는 개념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제산제는 위장질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산제는 증상 완화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복용을 중지했을 경우 오히려 산 분비가 더 증가하는등 질병의 악화를 막지 못했다. 결국 외과적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20세기 초반 식도 질환의 치료 원칙은 자극성 음식을 피하고, 편한 옷을 입으며 체중 감량, 높은 베개를 사용하는 생활 치료 요법이 동원됐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1895년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한 뒤 의학계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그동안 관찰하기 어려웠던 위와 식도 접합 부위에 역류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식도를 조여주는 근육 위치가 어긋나 있거나, 위 일부가 식도 위치까지 올라가 있는 경우가 발견됐다. 열정이 넘치는 외과 의사들은 수술을 통해 올라간 위를 복부 쪽으로 잡아당겨 내린 뒤 꼼꼼하게 꿰맸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단순하게 잡아당긴 수술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흉부 불편을 더 호소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1936년 터키 이스탄불의 병원에서 근무하던 외과의사 루돌프 니센은 심한 식도궤양으로 천공이 발생한 환자를 수술하고 있었다. 식도 천공부위를 봉합하고 나서 걱정이 된 니센은 위 일부를 이용해 식도를 감싸듯이 동여맸다. 구멍 난 부위를 덧댄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환자는 또 한가지 기쁜 소식을 말했다. 오랜 기간 고통스러웠던 가슴 부위에 불편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위 일부를 이용해 식도를 동여매듯이 감싼 결과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한 것이었다. 니센의 발견으로 외과적 치료 방법의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단순하게 식도를 내리는 방법이 아닌 위로 감싸 매는 방식은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줬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 방법을 점차 개발하면서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증가시키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 그러나 수술 자체의 위험성은 여전했다. 단순한 가슴 불편증상으로 외과적 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망설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역류성 식도염을 수술적 방법까지 동원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1900년대 위산 분비 기전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조건반사 실험으로 유명한 파블로브는 개의 식도를 절제해 음식물이 위에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위에서 소화효소와 위산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음식을 먹어서 위산이 나오는 것이 아닌 신경 작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신경 말단 작용을 조절하면 위산의 분비 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신경 전달 물질 중 하나인 히스타민을 차단할 경우 위산 분비가 줄어들었다. 위산 분비가 줄어들자 위궤양뿐 아니라 과도한 위산 역류로 인한 식도질환에도 효과가 있었다. 1970년대 개발된 히스타민 차단제는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혔던 속앓이를 개선했고, 수술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히스타민 차단제 역시 치료 성공률이 50%정도에 불과했다. 1989년 위산을 직접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양성자펌프억제제가 개발되면서 치료 효과는 급속도로 좋아졌다. 

서구식 음식이 증가하면서 역류성 식도염은 증가하고 있다. 단지 가슴앓이나 위산과다로 생각했던 식도질환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근본적인 치료방법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귤껍질과 알로에 같은 약초를 이용한 대증요법에서 질병의 원인인 위산의 분비 조절이 가능해진 것이다. 의학적 접근뿐 아니라 식사 조절과 생활 습관을 바꾸는 방법이 병행되면서 많은 사람이 가슴 불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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