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기원전 203년 중국 대륙을 두고 대치 중이던 두 명이 있었다. 한나라 왕 유방과 서초패왕 항우다. 항우는 유방의 군대를 격파하며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패전을 거듭하던 유방은 퇴각해 요새에 숨어 방어에 급급했다. 험준한 요새는 공략하기 힘들었고 양측의 군대는 오랜 시간 대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항우의 군대는 보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결국 퇴각하던 중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군에 포위됐다.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는 결국 패배했다. 전술적 기량이 항우에 비해 부족했던 유방이 승리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지만, 그 중 하나로 소하라는 참모를 꼽고 있다. 후방에 있던 소하는 유방이 패해 어려움을 겪을 때 끊임없이 물자를 보급해 줬다. 유방은 자신이 승리한 이유를 소하 덕분이라고 말하며 일등 공신으로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국 수도 워싱턴DC 관공서에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놓인 책상에 앉아서 숫자와 씨름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에는 막대한 물량과 인력이 필요했다. 전 국민이 동원되는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비용과 숫자들이 오갔다. 미국은 이런 물량 보급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경제학, 수학 전문가들을 모아서 비용과 물량을 적재적소에 보급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 나갈 신병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했다. 혹시라도 전염병을 가진 병사가 있다면 다른 건강한 동료에게 영향을 줘 전체 전투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십만 명을 검사하는 비용이다. 단지 몇 백 명의 이상자를 발견하기 위해 나머지 전체를 검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비용 때문에 검사를 포기하거나 대충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었다.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던 연구원 중 한명이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시다가 동료에게 몇 사람의 혈액을 섞어서 한꺼번에 검사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단순한 생각이었고 몇몇은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이 제안을 반박할 논리를 찾기 어려웠다. 

연구원 중 한명인 도프만은 바보 같은 제안을 자세하게 검증하기 시작했다. 한명의 사람에게 검체를 얻어 검사를 한 뒤 질병 원인 물질을 찾아내서 확인한다. 만일 10명 중 한명이 환자라면 그 사람을 찾기 위해 10번의 검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10명의 검체를 다섯 명씩 나눠서 검사할 경우 2번의 검사를 통해 5명 중 한명이 있는 집단을 찾아낸 뒤 다섯 명을 각각 검사하면 전체 검사횟수를 7번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도프만은 이 방법을 상급자에게 제안했다. 곧 미군은 진지한 검토 끝에 신병 검사 때 도프만이 제한한 집단 검사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10명의 혈액을 모아 한꺼번에 검사해서 질병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통과시켰다. 검사 횟수는 10분의1로 줄었다. 10명씩 모인 혈액에서 질병이 발견되면 각각의 혈액을 다시 검사해서 환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사횟수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도프만의 방법은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되기 시작했고, 통계학의 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이후 통계학자들은 도프만의 방식을 응용해서 다단계 집단검사를 시도했다. 20명씩 한꺼번에 검사한 뒤 이상이 없으면 통과시키고, 이상이 발견되면 20명을 또다시 5명씩 4개의 소집단으로 분리해서 다시 검사해서 같은 방식으로 검사량을 줄여보는 것이었다.

도프만의 방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질병이 아주 드문 경우에는 비용과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환자들이 많을 경우 오히려 불필요한 단계가 추가될 뿐이었다. 이후 검사 장비의 발달과 검사 후 환자를 바로 특정할 수 없는 단점 때문에 도프만의 혼합 검사법은 의료계에서 흔히 활용되지 못하고 잊혀져갔다. 2020년 코로나19로 군에서 여러 명의 검체를 혼합해서 검사하는 방법을 지시해 군의관들을 당혹하게 했다. 의료계에서는 정밀검사 장비의 발달로 사용되지 않았던 방법이 군에서는 계속 전승됐던 것이다.

코로나19 검사는 유전자를 증폭해 정밀하게 분석하는 방법이다. 검체 채취, 이동, 보관의 위험성뿐 아니라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대부분 코로나19 음성이 확실시되지만,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 전수 검사가 필요한 일부 대상에는 도프만의 집단검사 방법이 유용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단기 대량검사를 위해 여러 사람의 검체를 하나로 모아 한 번에 검사하는 혼합 검사 방법을 검토했다. 10명까지 검체를 혼합해 정밀검사를 시행한 결과 정확도의 차이가 없다고 확인됐다. 

용인시 140여개 요양시설에 약 6000여명, 20여개 요양병원에 약 4000여명 등 약 1만여 명의 어르신들이 집단 시설에 계신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어르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도프만의 혼합 검사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1만여명을 전수조사하기에 검사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한 번에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든다. 만일 집단검사 방법을 사용할 경우 비용은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장기적으로 여러 번 반복 시행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줄어든다. 요양시설뿐 아니라 단순하게 코로나19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비를 절감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과거의 방법도 현재 필요하면 재사용될 수 있고, 휴식시간 번득이는 지혜가 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오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승차 검사법, 보행 검사법과 같은 기발한 생각은 전 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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