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사람을 사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싶다. 하나는 자기만의 안위를 위한 이기파며, 또 하나는 타리파?(他利派)다. 이런 나눔도 있냐고 묻는다면 답 대신 그가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사를 두고 보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 S씨에게서 들은 것에 필자가 당할 뻔한 사실이 있어 이 글을 쓴다. 틈만 있으면 경안천 걷기에 나선다. 겨울동안 바싹 말려 땅속의 잡균들을 죽이는 흙먼지 날리던 논에 모를 심으려고 가득 채워둔 논물을 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물의 힘과 고마움을 연상해 봤다. 

걷다보면 길이 보평역 쪽으로 바뀌면서 상황도 달라진다. 겨울동안 비다운 비를 모르는 경안천 여기저기 보마다 흡족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며 할딱였다. 도와주고 싶으나 안 되는 일. 안타까움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걷다보니 송담대역 종합운동장 옆 쉼터가 보였다. 한 시간 쯤 걸었을 때 등에 난 땀방울이 반환점의 의자로 이끌었다. 옆 의자에는 먼저 온 일흔살 갓 넘은 듯한 노인이 자전거를 받쳐놓고 마스크를 벗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내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다. 지나가는 바람이 거듭 불붙임을 방해했다. 두 손으로 가리고 다시 시도하자 바람이 담배에 불붙임을 허락했다. 타오르는 담배를 입에 물어 맛있게? 빨아 댔다. 숨과 함께 연기를 들이마셔 폐 속으로 돌려서 코로 시원스레 뱉어냈다. 보는 듯 안보는 듯 담배 피는 것을 감시했다. 

필자도 지난날에는 하루에 두 갑도 불사하던 골초이었기에 그가 맛나게 태우는 모습에서 구수하고 상긋한 그 맛을 상상하면서 풀려던 숙제인 꽁초를 어떻게 처리하나 하고 연신 곁눈질 했다. 거의 5분 쯤 뒤 다 타들어가 꽁초로 변해가자 아쉬운 듯, 아까운 듯 하면서 의자 모서리에 대고 필터만 남다시피 한 꽁초의 잔불을 비벼 끄더니 휙 하고 발밑에 던졌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저씨 담배꽁초를 여기에 버리면 어쩝니까? 누가 치우나요? 여기는 쓰레기장이 아니지요? 모두가 쉬어가는 쉼터인데 서로 조심해야 하지 않나요?” 하자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그러면 이 꽁초는 어디다 버려요”하고 톤이 높아졌다. “여기도 저기도 버린 꽁초들이 있지 않소. 나만 한 것이 아니지 않소! 남일 간섭 말고 당신 할일이나 하쇼. 별사람 다 보겠네”하고 톤이 더 높고 커졌다.

사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그날 그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 바보였다. 그것은 같이 다니던 아내 말이 생각났기에 참은 탓이다. 아내와 둘이서 이 길을 2시간 가까이 걷다보면 평소에 오지랖 넓은 내 성격을 잘 알아서 가끔 교육을 시킨다. “길을 폭넓게 걷지 말 것, 오가며 사람과 말을 삼갈 것, 남들 시비에 끼지 말 것, 아니꼬운 일에 절대로 덤벼들지 말 것”하고 “남과 시비를 말고 살아야 합니다”하고 재차 강조했다. 그 자리의 담배꽁초 시비를 걸고 내가 꽁초 처리를 방해(간섭)했거나, 하지 않아 이른바 문제 삼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했다면 목소리 높여가면서 한바탕 해댈 위인으로 보였다. 이래서 더 말하지 않은 입 닫은 바보에 비겁자가 되었기에 그 일은 땅속에 묻히고 말았다. 진정 그 자리에서 “왜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립니까” 하고 시비를 걸어도 필자가 잘못했다고 욕할 사람이 있을까? 

“경찰들은 그를 경범죄 처벌법으로 심판할 수도 있지만 우리 한마디 말은 시비로 번지다간 끝내는 살인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무서운 세상 제발 몸조심 하세요” 하는 아내의 말대로 했으니 필자는 분명 내 몸만을 생각하는 이기파라고 손가락질 할지 여부는 독자에게 맡긴다. 

S사장이 들려준 이타파 이야기를 하면, 세상사는 조그만 사실로도 커다란 사건으로 나타날 수 있는 법이다. 편의상 A는 일 벌인 사람, B는 남(사회)을 위해 자기 위해와 손해도 감수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많은 사람과 함께 같은 장소에 있었고 A가 입안에 잔뜩 뭉쳐진 덩어리 가래침을 바닥에 뱉고 휴지와 담배꽁초를 버리자 옆에서 보던 B가 몇 마디한다. A는 버럭 화를 내며 목에 힘 주고 “너나 잘해! 이 ○○야” 50이나 될까 말까. 사태가 돌변하면서 “그럼 이 담배꽁초나 휴지를 어디에 버린단 말야, 휴지통이 없는데 집에 가지고 가란 말야! 이 ○○○들 휴지통 갖다 놓으란 말야” 하고 핏대가 곤두선 그의 팔에는 시커면 뱀 문신이 주위 사람들 까지도 아무 소리 못하게 압도시키고 있었다. 

B씨는 멱살을 잡히고 주먹으로 맞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결과였다. 공중도덕을 잘 지켜 명랑한 사회를 다 같이 만들자는 마음으로 A에게 몇 마디 한 것일 뿐. 주위에 있던 사람 누구도 그의 망나니짓을 보았을까 하고 궁금하면서 지난날 말 못한 내 경우를 비교해 봤다. 세상에는 자기 몸 희생이나 손해를 생각지 않고 정의감이나 의분(義憤)으로 타인(사회)도 생각하는 이타파인 B씨 같은 용기 있는 시민이 있다. 이런 이타심이 강한 사람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복되고 인정이 가득 찬 세상이리라 생각해보며 그날 일은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라고 자괴해 본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