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자랑이자 전설적인 3대 독립운동 가문의 중심 오광선‧정현숙 지사 부부가 국가보훈처 선정 2020년 ‘4월의 독립운동가’에 공동 선정됐다. 오광선 선생은 1896년 의병장 오인수의 아들로 원삼면 죽능리에서 태어났다. 1913년 여준선생이 세운 삼악학교를 졸업한 후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해방이 되는 순간까지 오직 독립운동의 한 길을 걸었다. 

항일 청년장교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대한독립군단 중대장,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했다. 1934년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했다. 1936년 경 상해임시정부 주석인 김구선생의 밀명을 받고 북경으로 파견돼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해 11월 임시정부 요인들에 앞서 임무를 띠고 단신 귀국했다. 하지중장과 담판,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건너가 김구 주석과 이청천 장군 등을 모시고 환국했다. 그는 광복군을 대한민국 정규군으로 키우기 위해 광복군 국내지대 사령관을 맡았다. 그러나 미군정의 반대로 무산되고 임정과 광복군이 배제된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자 이를 반대하다 1946년 광복청년회를 만들었다. 결국 광복군을 중심으로 한 건군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육사 8기로 입교해 육군 대령에 임관 돼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정현숙(이명 정정산, 1900~1992) 지사는 이동읍 화산리 출신으로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 독립군의 뒷바라지에 헌신해 ‘만주의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여사는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결성되자 맹원으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에 가입해 임정 활동에 참여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두 분의 자녀 오희영과 희옥 자매 역시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담해 선전활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광복군에 입대해 초모공작 등에 활약했다. 일가는 1945년 8월 해방 이후 광복군 국내지대장을 맡은 오광선과 국내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정부는 두 지사의 공훈을 기려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수여했으며 정현숙 여사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