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팅과 베스트의 인슐린 발견 논문 1922

고등학생이 제1저자로 어려운 의학 논문을 작성한 것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사가 높다. 의학의 전문성을 제외하고 학습을 이수하기도 바쁜 고등학교 시절에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실험에 참여하고 논문까지 작성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의혹의 눈초리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의료계에서도 고등학생은 아니지만 의과대학 학생이 여러 가지 뛰어난 발견을 한 경우는 있었다. 1867년 독일 베를린의대의 젊은 학생 랑게르한스(Langerhans)는 피르호의 연구실에서 실습하고 있었다. 피르호는 ‘모든 병은 세포에서 시작된다’는 이론을 정립하며 현미경으로 세포를 직접 관찰해 모양의 변화를 확인하고 전염병, 악성질환 등을 규명한 현대 병리학의 창시자다. 피르호는 질병뿐 아니라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빈곤, 가난 및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것을 발견해 제도를 바꾸기 위해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피르호의 명성은 독일을 넘어 전 유럽에 알려졌고,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전국에서 베를린 의과대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랑게르한스 역시 피르호를 동경하며 베를린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그의 제자가 되어 병리학 교실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눈이 좋고 관찰력이 뛰어났던 랑게르한스는 1866년 피부 밑 미세한 가지 모양의 신경 줄기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1867년 랑게르한스는 현미경을 통해 토끼의 췌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소화액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췌장 세포들 중 다른 세포에 비해 밝으며 주변에 작은 혈관들이 발달돼 있고 소화관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세포들이 뭉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랑게르한스는 실험 결과를 지도교수인 피르호에게 보고했고, 피르호 역시 이 세포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새로운 발견이었고 당연히 과학계에 보고됐다. 이 발견을 주도했던 랑게르한스의 논문은 현재 유럽병리학회지인 피르호 논문집에 제1저자로 실리게 됐다. 

랑게르한스가 발견한 세포 덩어리들은 30년 뒤인 1893년 프랑스의 라게스에 의해서 소화효소가 아니라 혈액 속으로 물질을 분비해서 혈당을 조절하는 사실이 밝혀졌고 ‘내분비’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랑게르한스의 논문을 본 라게스는 췌장 세포 덩어리가 너무나 잘 묘사돼 있어 이것을 ‘랑게르한스의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췌장은 소화효소뿐 아니라 ‘랑게르한스 섬’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물질이 함께 분비되는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세커드가 동물 생식기에서 남성 호르몬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갑상선이나 부신과 같은 내분비 장기에서 호르몬 추출의 열풍이 불었다. 내분비 호르몬을 분비하는 췌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 과학자들이 호르몬 추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추출 과정에서 소화효소들이 호르몬을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링레르한스의 논문 1869

1920년 캐나다의 개원의였던 밴팅(Banting)은 우연히 췌장의 소화효소관을 묶어 버릴 경우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세포들만 파괴되고 ‘랑게르한스 섬’은 잘 보존된다는 논문을 읽었다. 소화효소가 호르몬 추출의 가장 큰 방해물이었는데 제거하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밴팅은 췌관을 묶은 뒤 소화효소 분비세포를 파괴한 뒤 남은 세포들을 모아 혈당 조절 호르몬을 추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개원한 병원 근처 대학에 실험을 제안했으나 이미 비슷한 연구가 다른 곳에서 실패한 적이 있었기에 밴팅의 제안은 거부당했다.

밴팅은 모교인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에 매클라우드 교수에게 도움을 구했다. 매클라우드 역시 유사한 실험들이 실패했다는 논문들을 읽어봤기에 밴팅의 구상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여름 방학 때 빈 실험실을 빌려주기로 했다. 매클라우드는 동물 실험에 미숙했던 밴팅을 위해 의대생이자 실험실에서 일했던 베스트(Best)에게 함께 연구할 것을 지시하고 여름 휴가를 떠났다. 베스트는 실험에 초보였던 밴팅을 도와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로 보이는 두 사람은 놀랍게도 무엇인가를 추출해 냈다. 추출물을 주사하자 높은 혈당이 떨어진 것이다.

휴가에서 돌아온 맥클라우드는 너무 놀라서 진짜 무엇을 만든 것인지 다시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정말 밴팅과 베스트는 뭔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인슐린’이었다. 밴팅과 베스트가 발견한 인슐린은 조절되지 않는 고혈당으로 고통받던 당뇨병 환자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기적의 약이었다. 인슐린 치료를 받은 당뇨 환자들이 정상 혈당을 유지하면서 건강을 회복하자 기적의 신약 인슐린에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밴팅은 인슐린 특허를 단돈 1달러에 대학에 넘겨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밴팅과 베스트는 1922년 췌장에서 나오는 호르몬 즉, 인슐린을 발견한 논문의 공동 저자가 됐다. 실험실을 빌려주고 연구의 지도교수였던 매클라우드는 자신이 논문 작성에 기여한 바가 없다며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당뇨 치료의 큰 돌파구를 마련한 두 의대생은 정말로 뛰어난 관찰과 발견을 했고, 논문 작성에 큰 기여를 했기에 지도교수였던 피르호나 매클라우드조차 자기가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 논문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학자로서 매우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런 참여 없이 이름만 올라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논문의 저자가 선물이나 이익의 대가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국 의학계에 대한 전 세계적인 불신이 발생할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라는 큰 우려는 국내 의료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직은 학문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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