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전 국회의원 100주기 맞아 자손들 한 자리에
아들 학민 “비록 떠났어도 부모는 가족 응집의 중심”

▲ 제5대민의원 의원증(단기 4293년-서기 1960년,위). 민의원의원 김윤식 증정 월력(단기 4294년-서기 1961년, 아래). 전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인 김학민 씨가 서재에서 아버지의 자료를 훑어 보고 있다.

지난 11월 3일, 세종문화회관 수피아홀에선 50여 명의 한 가족이 모여 뜻 깊은 시간을 나눴다.

기흥구 하갈동 출신으로 1960년 제5대 민의원을 역임한 김윤식 선생(1914~1995)의 후손들이 그의 탄생 1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선대를 기리는 회고와 노래가 이어졌다. 생전의 각종 자료와 사진을 모아 영상물도 함께 관람했다. 그 작업은 손녀가 맡았다. 덕담과 오찬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이미 세상을 뜬 1대 김윤식․이상순 부부를 중심으로 생존해 있는 2대 형제자매와 손자까지 4대가 함께 한 셈이다. 

“몇 해 전 가족들이 모였을 때 기념모임을 제안했어요. 친척지간에도 멀리 지내는 게 요즘 세태지만 별로 계기가 없어요. 선대를 회고하는 자리를 통해 가족 응집의 계기를 마련한 거죠.”

아들 김학민(65, 전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씨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아픔이 있다. 환갑잔치를 해 드려야 할 때, 반독재 투쟁에 나선 김씨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통을 안으로 삭이며 환갑잔치를 없던 일로 했다. 아버지 역시 이듬해 3선개헌 반대운동 등으로 아들에 이어 옥살이를 하게 됐다. 아버지와 김학민씨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또 하나의 압축판이다. 해방 전후로 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

▲ 김윤식 전 국회의원 부부의 젊은 시절.

지 두 세대를 관통하는 40년은 참고 견뎌야 할 것이 많았던 쓰디쓴 세월이었다.  

이제 3남 4녀인 김학민씨 형제자매들 가운데 이미 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또 두 형제는 미국에 살고 있다. 출가한 자식이 후손을 두었으니, 선대로부터 4대를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요즘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모으며 정리하고 있다. 시대에 밀착해 살았고 당시 정치사에 주역 중 하나였던 만큼 귀한 것들이 적지 않다.

의원 당선증, 사용하던 국회의원 도장, 선거 벽보, 누렇게 변색된 손글씨 연설문 초안, 일년 내내 벽장에 붙여놓고 요긴하게 활용했던 월력 등이다. 월력엔 국회의원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온라인 공간에 가족 누리집을 운영하는 한편, 용인에 역사자료관이 생기면 기증도 생각 중인 김씨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가족만 특별한 것이 아니죠. 가

족의 중심에 있는 선대의 손때가 묻은 유물과 유품을 후손들에게 남기거나 선대를 기념하는 것은 가족 가치의 재발견 아닐까요.”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